가상전력구매계약(VPPA): 글로벌 스탠다드와 한국형 모델의 차이를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RE100 이행 가속화 흐름 속에서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한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여 최근 가상 전력구매계약(Virtual PPA, 이하 VPPA) 혹은 금융 PPA(Financial PPA)라는 명칭의 계약 방식이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기도 한 VPPA는 국내 시장에도 점차 도입되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실무 현장에서 접하는 국내의 소위 가상 전력구매계약은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표준 모델과 비교했을 때 그 실질적인 구조와 법적 성격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해바람 법률사무소 역시 국내 VPPA 계약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사뭇 다른 세부 조항들을 마주하며 명칭과 실질 사이의 괴리를 실감한 바 있습니다.

1.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VPPA의 본질과 차액정산 메커니즘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글로벌 스탠다드 관점에서의 VPPA는 기본적으로 발전사업자와 전기사용자가 장기간 고정된 가격으로 전력을 거래하기로 약속하는 금융 계약의 성격을 띱니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개념은 실제 전력이 물리적으로 기업에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약정한 고정가격과 가변적인 전력도매시장가격 사이의 차액만을 현금으로 정산하는 차액정산계약(Contract for Difference, CfD) 구조입니다.

이 구조하에서는 시장가격이 고정가격보다 높을 경우 발전사업자가 그 차액을 기업에 지급하고, 반대로 시장가격이 고정가격보다 낮아지면 기업이 발전사업자에게 차액을 보전해 줍니다. 이러한 금융적 설계를 통해 발전사업자는 시장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여 대규모 설비 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며, 기업은 변동성이 큰 에너지 시장의 가격 위험을 효과적으로 헤지할 수 있게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수백 메가와트 규모의 대규모 VPPA를 10년 이상의 장기로 체결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가격 안정성과 재생에너지 조달의 편의성 때문으로 보입니다.

2. 국내 VPPA 시장의 특수성과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중심의 계약 구조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논의되고 체결되는 VPPA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우리나라는 아직 VPPA에 관한 명확한 제도적 가이드라인이 부재하여 상당 부분 당사자 간의 사적 자치에 의한 계약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 VPPA라는 이름으로 체결되는 계약들은 글로벌 모델의 금융적 헤지 기능보다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의 장기 매매에 그 방점이 찍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내의 계약 구조는 전력 가격의 변동에 따른 순수한 차액 정산보다는 REC를 고정된 가격으로 장기간 확보하는 것에 주된 목적을 둡니다. 설령 계약 내에 차액 정산 메커니즘이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전력도매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상승할 때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상한선을 설정하는 등 시장 위험을 온전히 공유하지 않는 조항들이 빈번하게 확인됩니다. 기업이 시장의 모든 위험과 이익을 감수하며 가격 안정성을 꾀하는 진정한 의미의 CfD와는 거리가 먼 형태이지요. 이러한 한국적 특수성은 글로벌 RE100 캠페인을 주관하는 Climate Group과 CDP의 RE100 기술 기준(Technical Criteria)에서도 확인되는데, 해당 기준은 한국의 VPPA를 금융 계약이 아닌 REC 구매계약의 일종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The Republic of Korea and Japan both offer long-term unbundled EAC contracts from new projects. The contracts may be advertised as financial (virtual) power purchase agreements. However, the contracts do not involve contract-for-difference mechanisms which allow for the off-take of market risk by the corporate buyer, and are only for the projects’ unbundled EACs. The extent to which the corporate buyer off-takes any wholesale electricity price risk from new projects by providing an EAC revenue stream to the generator is unclear.

한국과 일본에서는 신규 프로젝트로부터의 장기 미결합 EAC 계약을 제공하며, 이 계약들은 종종 Financial (virtual) PPA로 광고되고 있다. 그러나 이 계약들은 기업 구매자가 시장 위험을 떠안도록 하는 차액정산(CfD) 메커니즘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오직 프로젝트의 미결합 EAC만을 대상으로 한다.따라서 RE100은 이러한 계약들이 미결합 EAC 조달로 보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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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계약의 실질 파악의 중요성

결론적으로 현재 국내에서 통용되는 VPPA는 글로벌 표준의 금융 계약이라기보다는 RE100 이행을 위한 전략적인 REC 확보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합니다. 물론 이러한 형태의 계약 역시 국내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높이고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재생에너지 시장의 성숙도가 높아짐에 따라 기업과 발전사업자 모두는 명칭이 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계약서 이면에 숨겨진 실질적인 손익 구조를 냉철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우리가 체결하려는 계약이 시장 가격의 변동 위험을 방어하기 위한 금융 차액정산계약인지, 아니면 단순한 REC 장기 계약인지를 명확히 인지할 때 비로소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리스크 관리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향후 국내 제도가 정비되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진정한 의미의 가상전력구매계약이 활성화된다면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한층 더 강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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