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8일을 기점으로 전력시장운영규칙이 대대적으로 개정되었습니다. 이번 개정은 특히 VPP(가상발전소)의 안정적인 운영을 뒷받침할 전력거래정산금 신탁제도의 도입과 재생에너지를 전력 계통의 통제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는 준중앙제도의 확대를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필자가 직접 법률자문사로서 구조 설계와 개정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이번 변화가 시장 참여자들에게 미칠 실질적인 영향과 법리적 시사점을 중심으로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전력시장운영규칙(2026. 1. 29. 개정)
1. VPP 전력거래정산금 신탁제도 도입(제주)
가. 현황
지난 2024년 6월 제주 시범사업의 본격적인 운영을 기점으로 실시간 시장 및 재생에너지 입찰제도가 도입되었으며, 이는 오는 2026년 육지 계통을 기반으로 한 본 시장으로의 전면적인 확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특히 육지 본 시장의 규모가 제주 시장의 약 75배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제도의 안정적인 정착은 전력 산업 전반의 신뢰도와 직결되는 중차대한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장 변화에 발맞추어 운영 중인 재정보증제도는 소규모전력중개사업자와 하위 자원 제공자 사이의 전력대금 지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핵심 목적으로 합니다. 현재 전력거래소는 사업자의 개별적인 경영 여건을 폭넓게 고려하여 현금성 담보뿐만 아니라 보증보험과 같은 비현금성 방식도 모두 인정하는 유연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본래 보증제도는 전력거래소에 대한 채무불이행을 방지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나, 실시간 시장 체제하에서는 대금 지급의 안전성을 높여 중개사업자가 보다 원활하게 하위 자원을 모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능 또한 수행하고 있습니다.
나. 문제점
하지만 제도 시행 과정에서 실제 시장 참여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적인 한계요소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선 구조적인 취약성 측면에서 중개사업자가 수많은 하위 자원들에게 전력대금을 배분하고 지급하는 과정은 횡령이나 결제 지연 등 예상치 못한 결제 사고의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중소 규모의 중개사업자들에게 가해지는 높은 진입장벽 또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중소 사업자들은 비현금성 보증을 활용하려 해도 과도하게 높은 보험 요율을 적용받거나 심지어 보험 가입 자체가 거절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이 경우 사업자는 선택의 여지 없이 거액의 현금을 담보로 예치해야만 시장 참여가 가능해집니다. 실제로 현재 제주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전체 사업자 중 중소 중개사업자의 비중은 약 23.8%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이 부담하고 있는 재정보증 금액만도 약 18.8억 원 규모에 달합니다. 이러한 재정적 부담은 중소 사업자들의 활발한 시장 진입을 가로막고 결과적으로 전력 시장의 다양성과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다. 개정내용
이번 개정의 핵심은 중개사업자가 전력거래소가 인정하는 결제시스템을 통해 하위자원에게 전력거래대금을 지급하는 경우 재정보증을 면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데 있습니다. 구체적인 개정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력시장운영규칙
제16.2.14.1조(급전가능집합전력자원의 재정보증)
① (중략) 단,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소규모전력중개사업자의 경우 재정보증을 면제할 수 있다.
1.「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
2.「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은 신용평가사로부터 채권 또는 기업신용등급에 대해 유효한 최우수등급(AAA)을 받은 자
3. 전력거래소가 지정한 [별표 8]에 규정된결제시스템을 통해 소규모전력자원에게 전력거래대금을 지급하는 자
이때 전력거래소가 인정하는 결제시스템으로는 현재 주식회사 신한은행에서 도입을 준비 중인 '클린페이 안심결제 시스템'이 대표적입니다. 이 시스템은 전력거래소가 VPP사에 대하여 지급하는 정산금을 제3자 금융회사가 대신 제공받아 VPP사와 하위사업자들에게 분배하는 구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라. 시사점
전력거래소가 VPP에 대한 정산구조에서 금전채권신탁의 구조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법리적으로 채권신탁이 이루어지는 경우 해당 채권의 채권자는 위탁자에서 수탁자로 이전됩니다. 즉 외견상 채권양수도의 형태를 띠게 되는데, 현행 전력시장운영규칙은 제주 시범사업에서 전력거래대금의 채권양수도를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돌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탁 제도의 안정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이러한 채권양도 제한 규정과의 연동을 고려한 추가적인 개정 작업이 필요하며, 실제로도 이와 관련한 개정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재생에너지 자원의 준중앙 제도 편입
가. 현황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는 필수적이지만, 전력 계통의 변동성과 불확실성 문제로 인해 계통 수용 능력은 이미 한계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보급 전망은 2030년 78.0GW를 넘어 2038년에는 121.9GW까지 상향 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2024년 봄철 경부하기 당시 전력 과잉 공급으로 인해 원전 및 비중앙발전기에 대해 총 32일간 최대 7.2GW의 출력 제어가 수행된 사례에서 보듯, 계통 안정성은 매우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계통운영자의 지시에 따라 실시간으로 출력을 조정할 수 있는 온라인 제어 가능 재생에너지의 확보가 시급해졌습니다.
나. 문제점
현행 제도하에서는 발전사업자들이 자발적으로 이러한 온라인 제어 성능을 갖추도록 유인할 수 있는 체계가 부족합니다. 현재 재생에너지 예측제도와 준중앙제도가 운영 중이긴 하나, 이는 예측 정확도에 치중되어 있어 실제 제어 성능 확보를 이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제주 지역의 재생에너지 입찰제가 육지로 확대될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VPP 사업자들의 제도 참여 기반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다. 개정내용
이번 개정의 핵심인 준중앙자원의 이원화 체계는 발전원의 물리적 특성에 따른 맞춤형 관리를 가능하게 합니다. 우선 기존의 비중앙 발전기들을 '연료형 준중앙급전발전기'로 재분류하여 전력시장운영규칙 제18.1.1조에 명시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바이오, 연료전지, 수력, 폐기물 등 출력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연료 기반 자원들이 포함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신설된 '재생에너지형 준중앙급전자원'은 태양광과 풍력, 그리고 이들의 집합체인 VPP(가상발전소)를 대상으로 합니다. 기상 조건에 의존하는 재생에너지 특유의 간헐성을 인정하면서도, 계통 불안정 시에는 중앙급전발전기에 준하는 관리를 수행하겠다는 의지입니다. 구체적인 운영 및 참여 요건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따릅니다.
- 운영 시점의 집중화
계통 유연성 확보가 가장 절실한 봄·가을철 경부하기 시간대(10:00~17:00)로 운영시간대를 한정합니다. - 기술적 진입장벽의 설정
단순히 발전량을 예측하는 수준을 넘어, 전력거래소의 급전 지시에 대해 1분 이내에 즉각 응동할 수 있는 온라인 제어 성능을 필수 요건으로 규정했습니다. - VPP를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
20MW 이하의 소규모 자원들에 대해서는 개별 참여 대신 VPP를 통한 집합적 참여를 허용함으로써, 소규모 사업자의 시장 편입을 유도하고 계통 운영의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라. 시사점
이번 개정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재생에너지를 출력제어(Curtailment)의 대상에서 '급전 지시의 주체'로 전환하여 관리의 실효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제주 시범사업에서 검증된 '전력거래정산금 채권 신탁제도'의 육지 본 시장 도입 가능성입니다. 준중앙제도에 참여하는 VPP 사업자들 역시 이러한 정산 구조의 변화에 맞춰 하위 자원 제공자들과의 계약 체결 시 신탁 관련 조항을 선제적으로 반영하고, 향후 구체화될 [별표 8]의 세부 개정 방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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