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8일, 김정호 의원 등 12인이 발의한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일부개정법률안」(제2215929호, 이하 '개정안')이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른바 'RPS 폐지법안'으로 불리는 이번 개정안은 국내 재생에너지 시장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시장 중심'에서 '정부 및 계약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꾀하고 있는 이번 개정안의 핵심 내용을 4가지 관점에서 짚어보겠습니다.
1. RPS 제도의 존치와 연착륙 암시
업계에서는 'RPS 폐지 법안'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있는데요, 우선 현재 시행되고 있는 RPS 제도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신재생에너지법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은 신ㆍ재생에너지의 이용ㆍ보급을 촉진하고 신ㆍ재생에너지산업의 활성화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공급의무자에게 발전량의 일정량 이상을 의무적으로 신ㆍ재생에너지를 이용하여 공급하게 할 수 있습니다(제12조의5 제1항). 공급의무자는 총전력생산량의 25% 범위 내에서 시행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을 신ㆍ재생에너지를 이용하여 공급하여야 함이 원칙이지만, 신ㆍ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를 구매하여 의무공급량에 충당할 수도 있습니다(제12조의5 제2항, 제12조의7 제1항).
그런데 개정안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REC 발급을 통한 현행 RPS 제도 자체를 완전히 폐지한 것은 아닙니다. 개정안은 여전히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이 공급의무자에게 의무 공급량을 할당할 수 있는 근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도를 즉각 폐지하기보다는, 하위규정을 통해 공급의무자 범위나 공급량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며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2. '공급'에서 '보급'으로: 보급의무자 제도의 도입
이번 개정안의 핵심 중 하나는 '보급의무자'라는 개념의 등장입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은 재생에 너지보급 촉진과 활성화를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발전설비를 보유한 자를 보급의무자로 지정, 이들에게 재생 에너지를 의무적으로 보급하게 할 수 있습니다(제12조의16 제1항). 또한, 보급의무자가 의무적으로 보급하여야 하는 재생에너지 보급의무량을 매 5년마다 산정하거나 보급의무 해제를 검토할 수도 있습니다(제12조의16 제2항).
개정안의 내용만 놓고 본다면 기존의 RPS 제도에 따른 공급의무자와 유사한 성격으로 볼 수 있지만, 핵심은 '의무 이행의 방식'에 있습니다.
기존 RPS가 시장에서 REC(공급인증서)를 구매하여 의무를 이행하는 방식이었다면, 새로운 체제는 PPA(직접전력거래계약) 등을 통한 재생에너지 보급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결국 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라는 RPS의 기본 개념은 유지하되, 이행 수단을 기존의 REC 거래에서 PPA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입니다.
3. 계약시장제도와 새로운 인증 체계의 탄생
가장 주목해야 할 변화는 '재생에너지 설비 계약시장제도'의 도입입니다.
첫째, 계약시장을 정부가 직접 운영하고 관리합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은 재생에너지 보급 활성화를 위하여 장기 고정가격계약 등 안정적인 계약방식을 포함하는 재생에너지 설비 계약시장제도를 운영할 수 있으며, 계약시장제도를 통해 도입할 재생에너지 설비의 총용량과 에너지원별 용량을 정하여 공고할 수 있습니다(개정안 제12조의14 제1항).
둘째, PPA 이행비용의 회수입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은 전력계통 신뢰도가 적합하게 유지되는 범위에서 특정 전기사업자와 전력구매자에게 계약시장제도에서 낙찰되어 설치된 설비에서 생산된 전력을 구매하게 할 수 있으며, 이때 구매계약자가 구매 이행에 소요되는 비용을 전기요금에 반영하여 회수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습니다(개정안 제12조의14 제6항).
셋째, 발전정보인증서의 도입입니다(개정안 제12조의21). RE100 기술기준에 따라 PPA를 통해 소비한 전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별도의 인증서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현행 규정상 PPA의 경우 원칙적으로 REC를 발급하지 않기 때문에, '발전정보인증서'를 통해 재생에너지 생산 정보를 확인·인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계약시장제도의 구체적인 윤곽이 조금 더 드러나야 할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기본적으로는 흩어져 있던 재생에너지 자원을 하나의 '계약 시장'으로 결집시키고, 보급의무자와 RE100 이행 기업들이 투명하게 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는 공공 PPA 시장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선언으로 보입니다.
4. VPP(가상발전소) 및 종합서비스기업의 육성
개정안은 소규모 설비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재생에너지 종합서비스기업' 지정 제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제12조의14 제5항).
현재의 소규모 전력중개시장이 단순히 SMP와 REC 거래를 중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VPP(가상발전소) 사업자들이 다수의 소규모 설비를 모아 계약 시장에 참여하는 'PPA 기반의 VPP 모델'이 주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소규모 발전사업자들에게는 편리하고 안정적인 수익처를 제공하고, VPP 사업자들의 성장을 장려하며, 전력시장 전반에 대해서는 안정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5. 총평: 에너지 시장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이번 개정안은 대한민국 재생에너지 정책을 ‘REC 기반’에서 ‘PPA 기반’으로 변화하고자 함을 의미합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기존 발전사업자뿐만 아니라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려는 기업들은 복잡해진 계약 구조와 새로운 인증 체계에 대한 면밀한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겠습니다.
해바람 법률사무소 또한 변화하는 에너지 법규와 시장 환경 속에서 의뢰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최적의 사업 전략을 제시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구하겠습니다.
